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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놀기/텃밭에서

반려 야채기르기: 풋고추 분양합니다.

by FatFingersJo 2023. 11. 3.

반려동물, 반려 식물, 반려 야채?

 

거실에 예쁜 식물을 기르면서 공기 정화도 하고 눈 호강도 하듯이, 식용식물을 반려 식물처럼 가까이 기르면서 필요할 때 바로바로 따서 먹을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득이 되지 않을까?

 

나는 정원 한 켠에 내 게는 아주 커다랗기 그지없는 텃밭이 있다. 그런데 하도 바람이 불어서 이 맘 때쯤이면 밭의 식물들이 거의 다 드러누워서 자란다. 애처롭기 그지없다. 한 번씩 강풍이 불기 시작하면 커다란 화분들도 넘어져 버릴 정도니 바람막이를 하는 것도 별 뾰족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햇볕도 많이 차단하게 되고, 보기에도 흉하고.

 

늦여름 가을 초 시즌2 야채농사

그래서 바람의 공격은 덜 받고, 햇볕은 많이 들어오는 다른 공간으로 커다란 컨테이너들을 가져다 놓고 야채들을 몇 가지 길러오고 있다. 올해는 여름이 다 끝나갈 즈음에 시즌2로 오이를 재배해 보았는데 그 탄탄하면서도 엄청난 수분을 가진 맛은 예술이었다. 토마토는 시즌2 폭망 했다. 이 친구들은 확실히 온도가 좀 받쳐줘야 한다. 피망과 풋고추도 심어놓았는데, 생각보다 우리는 피망을 많이 먹게 되지는 않았고, 우리 집 상전 기니피그가 거의 먹었다. 난 네가 먹는 거만 봐도 배불러...

이른 가을에 심어 맛을 본 시즌2 오이들

 

 

의외의 발견: 풋고추

하지만 풋고추가 의외의 발견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작년에 겨울을 야외에서 견디는 것을 본 것이다. 요리할 때마다 필요하면 쪼르륵 가서 몇 개씩 바로 따서 넣으면 어찌나 싱싱한지 만족도 최고였다. 한 팩씩 사서 냉장보관하면 오래지 않아 물러져버려 아까웠는데 정말 좋다. 갓 잡아(?) 올려 된장찌개 마지막에 송송송 썰어주면 그 향기에 먼가 맛있는 음식을 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올해도 야외에서 기르겠지만, 베란다가 있는 지인에게 모종을 나눠 줄 생각이다. 반려 야채로 입양을 떠나는 것이다. 얼마든 나눌 만큼 많이 있다. 베란다에서 기르면 통풍만 좀 주의해 주면 한 겨울 잘 지내고 내년에도 계속 고추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피망들도 몇 년째 계속 안 죽고 살아있다. 다년생이라고 한다. 기특하다.

컨테이너에도 심고, 지인에게도 나눠줄 여분의 모종들

 

나는 정원에서 텃밭, 컨테이너 화분에 이르기까지 농약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다. 비료도 1년에 2차례 꽃이 많이 피는 시기에 종합 비료알갱이들을 정원에만 툴툴 던져 주는 것 말고는 화학비료도 쓰지 않는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영양을 공급해주고 있긴 하다. 잡초도 중간중간 뽑아 손으로 대충 뜯거나 잘라주고 바로 옆에 놓아 자체 멀칭을 시켜준다. 왜냐면 잡초들이 흙을 덮어 습기를 지키고 미생물이 잘 자랄 환경을 도모할 뿐아니라, 잡초가 분해되서 역시 영양분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양분을 잡초가 뺏어먹었으니 도로 뱉어 돌려 내란거지...

 

사실, 농약 치면서 길러 먹을 거면 그냥 슈퍼나 시장에서 사 먹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손바닥 만한 텃밭 농사라도 공짜가 아니다. 그 자체로도 다양한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합리화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농사 자체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직업 농부가 아니고서야 본인이 좋아야 텃밭 농사를 짓지 않겠는가. 텃밭 농사도 사실 손이 없청 가고 시간을 은근 잡아먹는 일이다. 나는 이 곳 시장에서 사기 힘든 야채들, 예를 들어 쪽파, 깻잎 같은 것을 많이 심는다. 비싸기도 하고 아예 찾기도 힘든 품목이니까. 혹 감자나 고구마가 주인장의 관심을 못 받아 싹이 트면 그 싹튼 부분을  조각조각 잘라내 밭에 여기저기 쑥쑥 꽂아주고 흙을 잘 덮어두기도 한다. 잘 자란다. 오이, 토마토, 호박도 참 잘 먹었다. 브로콜리는 좀 골치가 아프다. 어디선가 브로콜리 전용 벌레들이 와서 정말 싹..... 다 정말 기가 막히게 훑어내듯이 다 먹어버렸다. 브로콜리는 애벌레에게 양보했다. 니들 다 먹어... 하지만 내년부턴 전쟁이다. 님오일이(neem oil)랑 난황유로 가만두지 않겠다. 올해는 맘껏 먹어라. 우리 집은 달팽이들의 천국인데 달팽이까진 나도 문제없는데 이 벌레들은.... 와... 이파리를 극도로 꼼꼼하게 먹어치우는 솜씨와 속도는 가히 가공할 만하다. 농약이 한 방울도 없으니 꿀맛이겠지!

 

버려진 대형 컨테이너 재활용하여 화분으로.

암튼, 농부가 되는 건 생각보다 쉽다. 굳이 예쁜 화분이 필요할까. 값싼 대형 플라스틱 화분. 아니면 나처럼 다이소(모든게 다 있어서 다이소인가? ㅎㅎ)  같은 가계에서 아주 값싼 까만색 소쿠리(?)나 누가 버린 멍멍이 사료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대형 컨테이너를 가져다 밑에 구멍 뚫고 야채를 기를 수도 있다. 텃밭 없어도 마당 한켠에 얼마든지 가능하다. 외려 햇볕이 잘 드는 대로 조금씩 옮겨 줄수도 있고, 받침대를 밑에 대놓고 물을 주면 물의 양도 절약하면서 효율적으로 관수할 수 있고, 너무 뜨거운 여름날에는 오전에만 해를 볼 수 있게 위치를 옮겨 줄수도 있고, 훨씬 더 능동적으로 기를 수 있다.

 

경험상 집안에 풋고추 화분 하나쯤 있으면 정말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씨앗도 없다면, 사먹은 풋고추 씨앗을 쓰면 된다. 강력 추천 아이템. 반려 야채 풋고추 화분!

 

내 곁에서, 내 사랑을 받으면서, 나를 위해주고, 오래오래 함께 하는 것.... 그게 반려의 의미라면, 반려 야채.. 가 맞지않나?...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