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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놀기/꽃밭에서

정원을 통제하려는 자, 가위를 들어라.

by FatFingersJo 2023. 10. 8.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장인이 아니다.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 푹 빠지면 자동으로 차곡차곡 늘어나는 것이 바로 관련된 연장들!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지만 초보는 연장에 목숨을 건다. 무조건 꼭~ 필요할 것이라고 믿어본다. 때로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정당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이솝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포도를 따먹으려고 반나절을 폴짝폴짝 나름 온갖 노력을 다했음에도 결국은 실패하고 돌아서는 여우가 그래 어차피 저건 아직 덜 익은 신포도일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 지혜가 너무 좋다. 일단 노력을 할 만큼 했는데 결과를 기분 좋게 받아들여야 할 것 아닌가!. 과하게 자기를 다그치는 대신 적당한 합리화로 본인을 위로해 줄도 알아야 이 퍽퍽한 세상 잘 견디고 살지 않겠는가. 아... 또 딴 데로 샜다...

 

장황하게 앞에 미리 밑밥을 깐 이유는 가위에 대한 나의 애착과 사랑(?)을 말해 보고 싶어서이다. 정원에서 필요한 다양한 연장 중에 으뜸은 가위라고 생각한다. 뭉뚱그려서 가위라고 말했지만 종류가 참 많다. 나무를 자를 때도 필요하고, 하늘하늘한 비덴스의 진 꽃들을 이발사처럼 사사삭 끝처리할 때도 필요하고, 용도별로 다양하게 필요하다. 아파트에서 생활할때는 그냥 적당한 가위 한벌이면 되었지만, 막상 정원이 생겨 커다란 나무들을 심어보니 나무통 굵기에 따라 가위가 다양 해질 필요가 있다. 심지어 톱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다행히 나에게는 아직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다. (물론 톱도 비치하고 있다! ㅎㅎ)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치고 가위를 아끼면 식물을 망친다?

가위자랑질(?)은 접어두고, 이제 가위의 높은 위상에 대한 근거를 대보자. 큰 나무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서 새로운 생명에너지를 자극해줘야하고, 예쁜 꽃들은 자신의 화려함을 다 펼친 꽃들을 바로바로 가위로 제거해 주어야 새로 올라오는 후배 봉오리에게로 영양과 에너지가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이미 시든 꽃들이 영양분들을 깔고 앉아 있는 꼴이니 시급히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뿐이랴. 식물들에게는 적당한 공간이 중요하다. 너무 빽빽하게 자라 통풍이 되지 못한다면 바로 그 자리에 병충해가 고개를 들이민다. 수시로 가위질을 통해 공간을 시원하게 확보해줘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가위질의 문제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말 labour of love의 끝판왕이다. 사랑의 노가다?라고나 할까. 정말 일이 많다. 정원을 돌아보다 시든 꽃이 보이면 즉시 따준다. 그 옆에도 보인다. 계속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간다. 내가 사는 동네를 둘러보면 꽃을 심어 놓은 집이 거의 없다. 대부분 빽빽이 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대체하도록 만든다든지 커다란 정원수로 장식을 하고 바닥은 전부 잔디를 깔아 단정하고 예쁘게 해 놓았다. 그런데 꽃들을 안 가꾼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이해가 간다. 보통 1달, 혹은 몇 주에 한 번씩들 전문 정원사들이 와서 잔디 깎고, 나무 트림해서 정리해 주고 간다. 주인은 전혀 정원에 손 안된다. 주인장이 정원사까지 겸직하고 있는 우리 집만 온통 꽃 천지다. 그도 그럴 듯이 나는 아침 점심 저녁 수시로 정원을 한 바퀴 순찰 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주머니엔 가위를 꽂고. 어찌 그리 식물들은 빨리도 자라는지. 누런 잎도 따 주고, 땅 넓은 줄 모르고 하늘 높은 줄만 알고 자라는 녀석들은 싹둑 잘라 옆으로도 좀 퍼지게 사전 작업을 해줘야 한다. 이 것은 속 시끄럽고 괴로운 나에겐 말할 나위 없는 위로와 휴식의 시간이다. 식물을 기르면서 이러다 도를 닦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식물을 기르면서 많은 이치를 깨닫게 된다고 할까. 이 보잘것없는 한 인간이 식물들을 길러보니 무릎을 탁! 치면서 감동하는 순간들이 온다.  

 

큰 나무는 정원사용 대형 가위를 대고 나무통을 잘라내고 큰 가지들을 과감하게 잘라준다. 내가 처음으로 올리브 나무를 대규모 정전했던 날, 남편이 집에 들어오다가 정전된 나무를 보고 거의 심장마비로 돌아가실뻔했다. 대체 나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렇다 바로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과감하게 때로는 정전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나무에게는 시련이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과정이 없으면 나무가 튼튼하고 건강한 수형으로 자라날수가 없다.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나중에 고쳐주려고 하려면 더 힘들고 오래 걸린다. 좋은 수형으로 자라게 해 주어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해주려는 것이다. 잘라낸 곳은 그 주변으로 영양과 에너지가 우회하게 되고 다른 곳에서 싹이 떠오른다. 

 

같은 이유로 장미는 겨울이 되면 봄이 오기 전 거의 밑동까지 무참하게 잘라준다. 그러면 새로운 가지가 생겨 올라온다. 정말 신기하다. 일 년 내내 혼자 삐죽이 자라오는 녀석들도 장미 전체의 수형을 생각해 주로 바깥으로 새 가지가 뻗도록 유도하며 수시로 가위질해 준다. 이렇게 잘라진 가지는 나의 또 하나의 즐거움, 삽목행이다.

 

식물들은 혼자서 그냥 자라지 않는다. 물론 들판의 야생화들도 나름의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잘 살아가지만 적어도 내 정원에 있는 식물들은 나를 믿고 있지 않을까? 예전에 들은 말이 있다. 농작물들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참 좋은 말이다. 내가 내 시간과 관심을 나눠주면 줄수록 왠지 더 싱그런 꽃들을 피우는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즐거운 착각일 것이다. 사랑의 노가다로인해 오른손 중지 중간은 굳은살이, 나머지 손가락은 사이좋게 류머티즘을 살짝 갖게 되었지만 그래도 난 내 정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좋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만의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간다. 어린 왕자와 장미처럼.